아산시, 신창초 윈드오케스트라 바람을 몰고오다
신창초등학교(교장 송화현)의 윈드오케스트라는 2002년에 창단되었으며 학교와 학부모님의 뜨거운 관심과 애정 속에 매년 각종 대회에 출전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충청남도 교육청 주최 제 17, 18, 19, 20회 초등학생 음악경연대회 관악합주부문 “금상”, 안동대학교 주최 제3회 전국관악합주경연대회 초등부 “금상”, 서울교육대학교 주최 제 44회 전국아동음악경연대회 합주부문 “1위”, 45회 “3위”, 2008 대한민국 관악경연대회 “동상”, 제 34회 대한민국 관악경연대회 초등부 “동상” 등 각종 대회에서 그 연주 실력을 인정받아 왔다. 현재 윈드오케스트라(지도교사 김진홍)의 인원은 41명으로 연습시간은 오전(화,목 08:20~08:50), 오후(월~금 15:30~16:30)로 나누어 매일 꾸준히 연습하고 있다. 또한 토요일은 격주로 10시 30분부터 12시 10분까지 운영하고, 오후 시간은 개인적으로 다른 악기를 연주하거나 팀원들끼리 앙상블 연습을 하면서 보낸다. 특히, 윈드오케스트라 운영의 특성은 졸업생들과 함께하는 연주회를 통해 선후배간의 끈끈한 결속력을 다지며 신창초등학교의 전통을 굳건히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불리한 지역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학교와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학생들 스스로 열심히 참여하여 특기적성 능력을 향상시키고 있으며 아울러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으로써 사교육비 절감에 기여하고 있다. 윈드오케스트라는 각종 지역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2008년 12월 12일에는 제5회 신창초등학교 윈드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를 개최하여 지역민들의 겨울밤을 훈훈하게 데워 주었고, 2009년 9월 5일에는 신창면 아산 코아루 에듀파크 아파트에서 열린 “찾아가는 문화예술 공연”에도 출연을 하여 참석한 아산 시민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받았으며, 9월 25일에는 “신창면민의 날” 기념식에 참여하여 축하공연 및 의식행사를 진행하여 참석한 강희복 아산시장, 총동창회장이신 이명수 국회의원 및 각계 인사, 지역 주민들에게도 환호와 찬사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신창초등학교의 윈드오케스트라는 앞으로도 끊임없는 연습과 노력으로 그 명성을 계속 이어갈 것이고 올 가을에 개최될 제 6회 신창초등학교 윈드오케스트라 정기 연주회에서부터 2010년 전국 대회, 그리고 신창초등학교 100주년 기념 행사 및 각종 지역사회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지역 문화예술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추석맞이 한가위 공연안내
추석을 맞이하여 아산시에서는 아래와 같은 공연을 마련하고 있으니 시민여러분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아산역사기행] 묘(墓)를 살펴본다
천경석 (온양고등학교 교사 / 아산향토연구회) 벌초도 끝나가고 추석이 다가온다. 마을에 다니면서 뵙는 분들의 공통적인 걱정 중 하나가 묘소 관리 문제다. 의식이 많이 바뀌어서 요즘은 매장보다 화장이 더 많다고 한다. 납골묘도 많이 생겼다. 어떤 각도에서 보면 잘 가꿔진 묘소는 공원처럼 보기에도 좋다. 격에 맞지 않고 너무 요란한 묘는 손가락질을 받는다. 산림 훼손이나 환경 문제도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나중에 어떻게 해야 되나. 아산시에도 유명한 묘소가 여러 군데 있다. 이충무공 묘소(사적 제112호, 음봉면 삼거리), 홍가신 선생 묘소(염치읍 대동리), 송악면의 이간 선생 묘소(외암리)와 강주 선생 묘소(궁평리), 홍만조 선생 묘소(배방면 세교리) 등 옛 어른들의 묘소가 많이 있다. 개화파 김옥균의 유허가 영인면 아산리에 있고, 윤보선 전대통령 묘소가 동천리에 있다. 좀 특이한 인물로는 한명회의 딸(도고면 도산리), 이완용의 아버지(영인면 구성리), 김영삼 전대통령의 장인(송악면 궁평리)의 묘소가 있다. 누구에게나 자기 조상의 묘가 가장 의미 있고 소중함은 물론이지만 주변에 갔을 때 이런 묘들을 둘러보는 것도 공부가 될 것이다. 석물 등 묘소의 격식을 알아보기에 가장 적합한 묘는 이충무공 묘소다. 묘 입구에 이르면 먼저 접하는 것이 신도비(神道碑)다. 조선시대에는 2품 이상인 사람의 사적을 기록해서 묘의 동남쪽에 세웠다. 이충무공 묘소에는 정조대왕이 지은 ‘어제신도비’가 또 있다. 홍가신 선생의 신도비는 바위 위에 세웠고, 강주 선생의 신도비는 적당한 크기에 기품이 있다. 바닥돌인 대좌 위에 비대(비석받침 -거북모양은 ‘귀부’와 방형은 ‘방부’ 등)를 놓는다. 그 위에 비를 세우고 관석(지붕돌 - 용을 새긴 ‘이수’나 지붕모양의 ‘옥개석 또는 가첨석’)을 얹는다. 비의 맨 위에 좀 크고 독특하게 쓴 글씨는 ‘제액’이라 전서체로 쓰기 때문에 ‘전(篆)한다’고 한다. 비문을 짓는 것을 ‘찬(撰)한다’하고 그 중 긴 문장(산문)은 ‘서(序)’, 시처럼 쓴 것(운문)은 ‘명(銘)’이다. 글씨 쓰는 것은 물론 ‘서(書)’라 한다. 새긴 사람은 안 적었다. 신도(神道)를 따라 묘에 이르면 석물과 봉분이 보인다. 봉분 앞 좌우에 기둥처럼 세운 것은 망주석, 문신 모습은 문인석, 양 모양은 석양, 아이 모습은 동자석, 가운데 석등 모양은 장명등이다. 조선시대에는 1품 이상일 때 장명등을 세웠다. 봉분 바로 앞에 상처럼 생긴 것은 상석(床石)이다. 상석 앞 작은 돌은 향로석이고, 상석 뒤 바닥에 깔린 돌은 혼이 노는 혼유석이다. 상석을 기준으로 긴 돌을 이어 깐 것을 계체석이라 하고 봉분 아래를 두른 것은 호석(둘레돌, 병풍석 등)이다. 봉분 바깥을 두른 담장은 곡장(곡담)이라 하는데 이충무공 묘소는 돌로 쌓았지만 일반적으로는 흙으로 두르고 흔히 ‘활개’라고 한다. 상석의 뒤, 봉분의 앞에 세운 묘비는 묘표 또는 묘갈이며, 옆에 세운 것을 따로 묘비라고 하기도 한다.(모양으로 비와 갈을 구분하기도 한다.) 나중에 옆에 또 세우기도 해서 비가 여럿이 되기도 하니 요즘에는 모두 묘비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본다. 옛 것은 그냥 그대로 문화재로, 유적으로 보면 된다. 문제는 우리다. 매장을 할까 화장을 할까. 납골묘를 만들어야 하나? 산골은 좀 서운하지? 봉분을 만들까 평분을 할까. 수목장은 어떨까. 표지석은 어떻게 할까. 국립묘지처럼 하면 어떨까. 요즘이 과도기인 것 같다. 여러 해가 지나고 나면 대세가 형성될 것이다.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아산의 산야! 행복한 산행 떠나보실래요?
아산기맥 50KM....장거리 종주코스 개발 - 배방산, 도고산, 황산의 등산로 일제정비 시가 『아산기맥 50KM』장거리 산행 종주코스를 개발, 전국의 산사람에게 러브 콜 사인을 보내고 있다.아산기맥 50KM 배방산→ 태화산→ 망경산→ 광덕산→ 봉수산→ 도고산을 연결하는 등산로로 시는 전국의 산사람에게 새로운 등산코스로 선보여 아산의 아름다운 산하와 함께 아산의 지명도를 높여 나 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이와 함께 관내 5개 대학의 대학생 층, 청소년과 고난을 극복하는 교육과 체험의 공간으로 제공되어 산행 중 우리고장에 대한 생각, 애향심도 불러일으키는 계기로 만들어 나간다는 계획이다.특히 시는 아산이 가지고 있는 수려한 풍광의 산을 통해 수도권과 가깝고 교통도 편리한 장점을 살려 경기, 서울 지역의 산악인 유치와, 26만에 달하는 아산시민에게 쉽고 편리하게 산을 접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이를 위해 시는 배방산, 도고산, 황산의 등산로를 대대적으로 정비 했다.▲ 배방산에는 목교보완,로프난간설치, 방향표지판설치 등 편의시설은 물론 생태해설판과 운동기구 등 자연학습과 체계적인 운동을 병행할 수 있도록 정비를 실시하였으며 특히, 등산로 입구에 자전거 거치대를 설치함으로서 주변 시민들의 접근을 보다 편리하게 하였다.▲도고산에는 사업비 157,833천원을 투입하여 돌계단 및 목계단 541단 설치 및 목재데크 77m를 설치하여 산행객의 안전사고 예방에 기여하고, 로프설치 230m, 운동기구설치 4점, 평상 등을 설치했다.▲도시근교의 산이면서도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황산에는 사업비 83,227천원으로 등산노선의 전체적인 정비 및 개설과 각종 편의시설을 설치하여 시내권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밖에도 연암산 등산로정비는 물론 덕암산, 설화산, 국사봉, 학성산, 금산 등의 입구에 대한 안내이정표를 정비하여 설치함으로서 이용에 편의를 도모해 나가고 있다. 시 관계자는 앞으로도 각각의 산이 갖는 고유의 멋을 살려 특색 있고 다양한 등산로로 정비함은 물론 특히 도시근교의 산들에 대하여 보다 관심을 갖고 정비하여 시민들이 쉽게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등산로를 정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효자·효부의 정려(旌閭)를 찾아간다
천경석 (온양고등학교 교사 / 아산향토연구회) 올해는 추석이 좀 늦어진다. 9월 중순이면 곳곳에서 산소 벌초하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아산 지역을 다니면서 정려가 참 많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요즘 세상에 누가 효자·효부·열녀를 찾고 알아주겠는가. 시대와 맞지 않는(?) 얘기다. 물론 열녀에 대해서는 나도 부정적이다. 그러나 조선시대와 행태나 방식은 많이 달라야 하겠지만, 그래도 효자·효부(孝婦)에 대해서는, 지금 이 시대에도 분명 의미가 크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추석을 한 달여 남겨 둔 오늘, 이번에는 정려를 살펴보기로 한다. 효열(孝烈)의 고장 아산 지난해 말 온양문화원과 함께 정리한 소책자 『아산효열정려지』에는 아산시 지역 63명의 효자·효부·열녀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누락된 배방 회룡리의 효자 전효원(全孝源) 정려를 포함하면 64명이다(효자 37, 효부 5, 열녀 22). 문서 자료나 정려, 효자비 등 명확한 근거가 있는 분들이다. 이름 등만 간략히 전하는 분들까지 하면 훨씬 많다. 현재 26 기의 정려가 있고 비석이나 돌기둥이 전하는 곳이 3곳이다. 곳곳에 정려가 있다고 보면 된다. 송악면 동화리 2리에 있는 효자 강인수(姜麟壽)의 정려를 보자. 그는 부친 와병에 좋은 약을 구해 지극정성으로 간병했고, 한겨울에 부친이 수박을 찾으시자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마른 덩굴에서 수박을 찾아서 드리니 병이 나았다. 뒤에 부모님이 돌아가심에 예를 갖추어 장례를 모시고 3년간 여막에서 시묘했다. 이런 효행으로 선릉참봉에 추천되었고 정려가 내려졌으며 후에 정3품 통정대부에 추증되었다. 정(旌)은 왕의 뜻을 전하거나 왕명을 받은 자가 지니던 깃발을 의미했지만, 넓게는 왕명을 적은 현판(懸板)까지 포함했다. 려(閭)는 마을 입구나 길가에 세운 문(門)인데 정을 걸어 놓은 건물을 뜻하게 된다. 정문(旌門)이라고도 해서 효자문, 열녀문이라는 말도 자주 쓴다. 비각처럼 생긴, 홍살을 두른 한 칸짜리 건물 형태가 대부분이지만 대문 위에 걸기도 했다(아산에는 없음). 배방 중리의 맹사성 효자리비처럼 비석을 세운 곳도 많다. 어떤 사람이 효행이나 열행을 했을 때 당대에 또는 후대에 그 행실을 기리기 위해 지역의 유림들이 수령이나 감사를 통해 정부에 요청한다. 사실이 명백하면 왕에게 아뢰어 왕명으로 표창한다. 우리 고장은 왕의 온양행궁 행차 때에 아뢰기도 했고, 암행어사가 파악해서 상신하는 경우도 있었다. 표창은 정 또는 비와 함께 상품을 받기도 했고 세(稅)나 역(役)을 면제해주는 등 다양했다. 사대부의 경우 관직을 받거나 사후에 추증되기도 했다. 열녀는 남편을 따라 죽거나 정절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끊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아무래도 오늘날과 맞지 않는다. 효행의 경우는 부모 간병 시에 약은 물론이고 손가락을 베어 피를 드리거나 대변을 맛보며 최선을 다하는 경우가 많다. 잉어·수박·대추·무순·오골계·금두꺼비·꿩알·오골계 등 귀하거나 철이 맞지 않는 것들을 구해다 드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3년 시묘는 거의 기본이다. 옛날엔 흔한 일이고 비슷비슷하지 않느냐고 깎아내리면 안 된다. 조선시대에도 무척 힘든 일이었다. 오늘날에도 현실에 맞는 효행과 열행은 얼마든지 가능하고 의미가 있는 일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돌아가신 뒤에 묘소를 거창하게 만들거나 제사를 뻑적지근하게 준비하는 것은 사실 산 자들을 위한 일이다. 어버이 살아신 제 섬길 일란 다할 일이다. 아산시에서 창작된 문화·관광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