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호 기획특집] 옆집 이웃이 작가가 된 사연: 「공사장 건너편 도서관」 출판기념회
옆집 이웃이 작가가 된 사연: 「공사장 건너편 도서관」 출판기념회 지난달 17일 탕정온샘도서관에서 특별한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탕정온샘도서관에서 진행된 ‘나도 작가가 될 수 있다’ 강의를 수강한 11명의 신예 작가(김이다, 이은지, 문지애, 김하늬, 이혜정, 조아람, 김다래, 로빈, 자라영, 이해나, 봉산)들이 함께 집필한 책, 「공사장 건너편 도서관」의 출판기념회였다. ‘나도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을 펴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으나 현실적인 이유로 도전하지 못했던 일반 시민들을 위해 마련되었다. 강좌는 지난 2개월간 매주 금요일마다 진행되었으며, 참가자들은 집필과 퇴고의 기본 연습부터 시작해 다양한 내용을 배우며 자신만의 글을 써나갔다. 출판기념회에서는 작가들이 돌아가며 자신의 글을 쓰게 된 계기와 과정을 공유하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또한 작가들이 뽑은 마음에 드는 구절을 낭독하고 사인회의 시간도 가졌다. 참석한 독자들은 작가들의 진솔한 이야기에 큰 박수를 보내기도, 따스한 포옹을 건네기도 했다. 강좌를 이끈 박기복 작가는 “책을 펴내는 과정을 함께하며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며 “강의에서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거침없이 글을 써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념회에 참석한 김이다 작가는 “처음에는 10주 만에 해낼 수 있을지 두려움이 있었지만, 함께 강의를 들은 수강생들과 강사님 덕에 완성할 수 있었다”며 소감을 밝혔다. 또 다른 참석자인 문지애 작가는 “이 강의를 통해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공사장 건너편 도서관」은 온라인 교보문고에서 구매할 수 있다. 인세는 지역아동센터에 기부될 예정이다. 한편 이번 출판기념회를 통해 일반 시민들이 작가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 ‘나도 작가가 될 수 있다’ 글쓰기 강좌는 하반기에도 진행될 계획이다.작성: 홍보담당관[6월호 기획특집] 호국 보훈의 달, 아산의 영웅을 만나다!
호국 보훈의 달, 아산의 영웅을 만나다! 아산에서 예산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신창면 읍내리 산57-1에는 중요한 언덕길이 있다. 동네 어르신들은 이곳을 ‘한치고개’ 또는 ‘한티고개’라고 부른다. 이곳에는 신창휴게소가 있는데 휴게소에 서 있으면 커다란 탑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경찰 충혼탑이다. 오늘 만나볼 영웅들의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1950년 6월 25일 북한 인민군의 기습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전쟁의 불길은 아산을 비껴가지 않았다. 북한 인민군이 아산에 진입한 것은 1950년 7월 7일이었다. 무장한 인민군이 둔포면을 거쳐 음봉 경찰서를 공격했고, 이 과정에서 경찰관 3명이 목숨을 잃었다. 인민군의 예산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온양경찰서 경찰 70명과 예산경찰서 경찰 40명, 당진경찰서 경찰 40명이 집결하여 이동하였고 이곳 한티고개에서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다. 무기를 비롯한 모든 것이 인민군에 비해 열악했지만, 경찰관들은 가족과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싸웠다. 비록 전력의 열세로 인해 후퇴할 수밖에 없었지만, 인민군의 진격 속도를 늦춰 아군이 방어할 시간을 벌어주었다. 신창면 역사를 담고 있는 향토지는 이날 벌어진 전투를 ‘신창 한티고개 전투’로 기록하고 있다. 1982년 6월 25일 아산경찰서와 재향경우회는 이곳에 충혼탑을 세웠다. 충혼탑 기단부에는 온양경찰서 이현종 경감을 포함하여 6.25 전쟁 중 전국 각지의 전투에서 순국한 38명의 경찰관 신위가 모셔져 있다. 1950년 7월 10일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아들이었고, 사랑하는 남편이었으며 아빠였을 영웅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대한민국을 지켜낸 아산의 영웅들!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작성: 홍보담당관[시민명예기자] 우리의 늘봄학교는 이제 시작, ‘늘봄 학교’의 한 달
우리의 늘봄학교는 이제 시작, ‘늘봄 학교’의 한 달시민기자 김성실 2024년 충남에서 늘봄학교를 시행한 지 한 달이 지났다. ‘늘봄학교’는 정규수업 외에 학교와 지역사회의 다양한 교육자원을 연계·활용하여 학생들의 성장과 발달을 위해 제공하는 종합 교육프로그램이다. 기존에 운영되던 ‘돌봄교실’ 및 ‘방과후’와 달리 늘봄학교는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와 선택을 고려하여 운영된다는 점과 교육비 부담이 없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특히 늘봄학교는 초등학생 누구나 이용 가능하며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은 2시간 동안 무료로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전년도 충남도에서는 72개교 시범 운영을 거쳐, 올해 1학기 119개교에서 운영한 늘봄학교는 방과 후 과정과 달리 다양한 과목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스포츠, 웹툰, 연극, 뮤지컬 치어리딩 등의 프로그램이 생겨 아이들에게 보다 활동적인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늘봄학교 인기의 또 다른 이유로는 학원보다 학교에서 운영된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으며 이는 부모들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고 나아가 지역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편 충남교육청(교육감 김지철)은 지난달 22일 2학기에는 도내 모든 초등학교에서 늘봄학교를 전면 시행함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점차 저녁 돌봄 시간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 되어 맞벌이 부모들의 걱정을 덜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이 학교 내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아있다. 운영 공간 부족과 교사들의 업무 과중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정부, 교육청, 학교, 학부모 간의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진다면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교육과 돌봄을 사회에서 같이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려는 지역사회의 노력을 보며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써 감사함을 느끼게 해준다.[시민명예기자] 주말농장으로 도시농부가 되다!
주말농장으로 도시농부가 되다!시민기자 김선용 2024년도 4월 6일 아산시의 주말농장이 문을 열었다. 2005년부터 시작되어 20여 년간 운영되고 있는 아산시 주말농장은 해마다 도시농업에 관심 많은 아산시민에게 큰 기대를 안겨 왔다. 아산시에서 무료로 운영하는 주말농장은 총 7개소로 염치읍 방현리에 2곳, 배방읍 갈매리, 송악면 외암리, 방축동, 신인동, 배미동에서 1곳씩 운영 중이며, 텃밭 총면적은 24.212㎡로 1,150개 가구가 참여할 수 있다. 아산시 주말농장은 경작을 위한 경운, 정지, 로터리 작업 등의 기반 작업 후 분양을 진행해 농사를 처음해보는 시민들도 쉽게 경작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주말농장은 대부분 저렴한 임대료로 제공하지만, 아산시의 주말농장은 무료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더 매력적이다. 지난 3월 초, 아산농업기술센터 사이트에서 주말농장 텃밭을 온라인 선착순으로 분양했다. 오전부터 시작된 온라인 분양은 많은 시민이 참여하여 당일에 분양이 마감될 만큼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단순히 주말농장 분양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초보 농장주들을 위해 지속적인 교육도 함께 진행된다. 올해에는 주말농장 사전교육이 총 4회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무려 1,000여 명이 교육에 참석할 정도로 많은 호응이 있었다. 사전교육에서는 주말농장에서 지켜야 할 규칙과 주의점, 작물 재배와 비료 등의 사용 방법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9.9㎡의 텃밭은 가꾸기 어렵지 않은 소박한 크기지만, 직장생활로부터 쌓은 스트레스를 풀어낼 수 있는 충분한 크기다. 주말마다 가족, 이웃들과 함께 직접 농산물을 키워내며 수확의 기쁨과 농업의 매력을 느낄 수 있기에 주말농장은 도시민에게 적합한 여가 활동이다. 한편 아산시 주말농장은 작물 수확기에 맞춰 올해 11월 10일까지 운영될 예정이다.[시민명예기자] 온양온천은 언제부터 유명했을까?
온양온천은 언제부터 유명했을까?시민기자 김연광 아산을 대표하는 ‘성웅 이순신 축제’가 최근 성대한 막을 내렸다. 이순신 장군과 함께 아산을 대표하는 온양온천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온양온천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 중 하나로 ‘삼국사기’에 ‘끓는 물이 나오는 우물’이란 뜻의 탕정으로 처음 등장한다. 조선시대 온양온천을 처음 찾아온 왕은 태조였다. 1396년 태조는 서울을 떠나 3월 16일 온양에 도착했고 보름간 머문 후 4월 7일에 귀경했다. 이렇듯 온양온천은 그 명성과 효과로 이미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고, 왕의 온천을 위한 여정이 잦아지면서 세종 때 이를 위한 숙소를 축조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온양행궁(온궁)의 시작이다. 행궁은 왕이 본궁 밖에서 임시로 머물기 위한 건축물을 뜻하는데 온궁은 이와 더불어 온천욕에 특화돼 건설했다는 특징이 있다. 왕이 사용하지 않을 시엔 백성들도 사용 가능했으며 왕실의 전용 공간을 제외한 다른 시설 역시 개방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시기를 거치며 온궁은 크게 손상되었고 장기간 복구되지 못한 채 방치되었다. 이후 온궁은 현종 시기에 복원되어 다시 전성기를 맞이했다. 현종 이후 4대 왕과 그 가족의 온행은 꾸준히 이어졌으며 ‘온양별궁전도’에서는 탕실을 중심으로 여러 시설로 구성된 온궁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1800년대 문호가 개방되고 일본인 상인들이 온양온천의 상업적 가치에 주목하며 온궁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들은 러일전쟁 중 온궁을 자신들이 매입했다고 주장하며 강제로 탈취했고 이후 시설을 개조해 이듬해 ‘온양 관’이라는 명칭의 온천장을 개장해 관광객을 유치하며 영업을 개시했다. 1926년 이후 온양관은 근대적인 온천여관인 ‘신정관’으로 변경됐고 해방 후 ‘온양철도호텔’로 바뀌었지만 6·25전쟁 중 그 일대가 파괴되었다. 현재는 ‘온양관광호텔’이 과거 온궁의 자리에 위치하게 되며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아산시에서 창작된 시정신문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